참여작가




강라겸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 2021
단채널 영상, 모니터, 사운드, 타투 시술 의자, 혼합 설치, 가변크기, 4분 15초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소원도〉, 2013
실크 위에 잉크와 금분, 130 x 193 cm


〈난자 두 개로 태어난 새끼 쥐의 꿈을 꿔〉는 2018년 과학 저널 ‘세포줄기세포’에 게재된 두 마리의 엄마 쥐로부터 단성 생식을 통해 새끼를 낳았다는 논문에서 착안하여 남성에 의한 수정 없이도 재생산의 가능한 SF적 상상을 펼쳐내는 작업이다. 작가는 진화된 존재를 탄생시키고 싶은 욕망과 현실의 신체가 불일치하는 경험을 관객에게 속삭이며 이성애 중심의 정상 가족 규범을 수행하지 않으면 재생산의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에 조용한 균열을 일으키는데, 재생산을 포함하여 가족의 확장에 대한 상상 자체가 박탈된 사회가 지우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불러오게 한다. 작품을 통해 관객은 작가의 동성 애인으로 또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에 두 개의 난자로 태어날 아이로 초대되고, 애인의 등에서 갈비를 찾아내고 팔에 그려진 뱀과 교미하는 또 다른 뱀을 그리며 새로운 잉태 방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제도 안에 안착한 이들에게는 초과학적이고 인위적인 의료기술을 동원해서라도 재생산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회를 떠올리면 결국 자연적 재생산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교미하는 뱀의 이미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탄생을 상상하는 신화적 이미지의 퀴어링은 초기작업 〈소원도〉에서 부터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다. 불교 변상도의 이미지를 빌려 붓다, 제우스, 각종 신과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등에서 갈라진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며 비인간 동물과 인간, 사람과 신, 여성과 남성의 다양한 경계 너머 혹은 그사이 어딘가 존재하는 비체들을 한 자리에 모아 공존하는 상상을 펼쳐놓았다. 타투이스트이기도 한 작가의 작업실로 초대되는 듯한 구성으로 설치된 공간의 한쪽 벽에 걸린 〈소원도〉는 우리를 작가의 사적 공간뿐 아니라 작가의 관념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저출생 해결을 위한 새로운 임신과 피임, 성교육의 선언문〉이라는 퀴어 여성 작가의 선언문을 작성할 예정이다. 이는 현실적 조건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여성의 몸을 기능적으로 다루는 사회에 보내는 경고로 보이기도 한다. 연령 지표로 ‘가임기' 여성으로 포착되지만, 스스로 재생산 규범을 거부해서가 아닌 성적지향의 이유로 다시 배제의 영역으로 미끄러지는 퀴어인 여성이 저출생 해결을 위해 힘쓰는 정부에게 보내는 존재증명서일 수도 있다. 이 선언문은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 안에서 발화되거나 노출되는 말들을 작가가 포착하여 개입되면서 완성되는데 작가의 커밍아웃이면서 동시에 여러 존재들의 연결망의 글이 된다. 이 과정은 전시 웹사이트와 연동돼 공개되어 라이브 퍼포먼스로서 기능하고, 완성된 글은 전시 이후 퍼포먼스로 재구성될 예정이다.




https://ragyeom.com / kang.ragyeom@gmail.com
강라겸은 1991년 출생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타투이스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 과 예술사를 졸업 후 동 대학원의 인터미디어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조된 신화, 종교의 드라마 틱 한 연출을 차용하며 이를 신체로 옮겨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2019년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끝없는 여지》 단체전에 참여, 국가폭력 역사의 공간을 타투로 신체에 기록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길보라

<My Embodied Memory>, 2019
HD 단채널 영상, 16분 57초


공동기획자이자 참여작가인 이길보라는 2016년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불법 낙태 수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던 때 #나는_낙태했다 라는 칼럼을 썼다. 낙태죄 폐지를 외치며 거리에 나온 이들과 연대하는 선언이었다. 작가가 그렇게 입을 열었을 때 많은 여성들은 말을 이어갔다. 온라인은 또 하나의 공론장이 되었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임신중지가 ‘죄’였던 시간 동안 여성들의 경험은 이야기되지 못했고 숨겨야 하는 것이었기에 이어 말하기의 행렬은 해방의 순간이 되었다. 작가는 전시 참여작품 〈My Embodied Memory〉를 통해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엄마, 할머니가 임신중지 경험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재생산 역할 수행을 강요받은 여성의 공감대를 연결하는 것과 동시에 가족구성원으로서 죄책감을 포함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어머니 관계 사이에서 작가는 대화의 연결고리가 된다. 작가는 수어를 구사하는 청인으로서 농인인 어머니와 청인인 할머니 사이의 실재로 소통의 다리이면서 동시에 전쟁터였던 각자의 몸의 기억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벽을 허무는 주체가 되는 것을 은유한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인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찍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학사, Netherlands Film Academy Artistic Research in and Through Cinema 영화학 석사를 졸업했다. 농인 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는 2015년 일본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뉴아시안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다. 국내 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 및 수상하였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극장 개봉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을 다룬 영화 〈기억의 전쟁〉(2018)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심사위원 특별언급을 받았고, 미국 동아시아 인류학회 데이비드 플라스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당신을 이어 말한다』 등이 있다. 2020년 Young Art support Amsterdam 상과 2021년 네덜란드 정부가 세계 각국의 여성 리더에게 수여하는 젠더 챔피언 상을 받았다. 장편 영화로 기획개발 중인 영화 〈Our Bodies〉는 2020년 Berlinale Talents의 Doc Station 프로젝트로 선정되었다.





전규리

<다신, 태어나, 다시>, 2020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12분 38초


<산증인>, 2021
단채널 영상, 컬러 흑백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백말띠의 해였던 1990년은 역사상 가장 불균형한 성비로 신생아가 태어났다. 백말띠 해에 태어나는 여성이 드세고 팔자가 사납다는 가부장 사회의 여성혐오와 출생 전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는 의료기술 발전이 협력해 잔인한 여아 살해가 일어났다. 셋째 이상의 아이인 경우 이 성비는 더욱 심각했다. 낙태죄가 불법인 사회적 상황 아래 문화적으로는 여아 낙태를 권장하면서 그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하는 촌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전규리의 〈다신, 태어나, 다시〉는 1990년 선택적 여아 낙태의 생존자로 태어난 작가가 1930년에 태어났다 일찍 죽고, 1990년에 태어나지 못했다가, 2050년에 드디어 다시 태어난 여성을 상상하며 과거의 또 미래의 백말띠 여성을 소환한다. 현재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전해진 여성 혐오적 미신과 국가적 차원의 재생산권에 대한 규제까지 현재 우리의 몸에 이어진 억압의 흔적과 근원을 추적하고 다시 미래에 대한 책임을 사유한다. 작가는 국가 사이를 물리적으로 횡단하고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면서 억압의 역사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덧씌워진 백말띠의 속성을 오히려 긍정하며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연결하고 탈주의 포물선을 만든다. 일상적인 것들은 뭉뚱그린 채 거대담론의 역사를 말하던 남성적 서사와 이별하고 막연하게 분절된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 조금 더 먼 미래, 아주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기하면서 현재에 꿈꾸는 것이 미래의 현재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신작 〈산증인〉은 전후 한국 문신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사회-구조적 억압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자아상에 남아있는지 탐구하는 멀티미디어 설치 및 영상 프로젝트 시리즈 중 일부인 영상이다. 작가가 추적하는 여러 문신의 역사 중 1950년대 전쟁 포로의 몸에 새겨졌던 것들의 이야기다. 한국 전쟁 중 유엔 사령부에 의해 통제된 북한군, 중국군, 민간인 등으로 이뤄진 포로들은 자원송환 원칙에 따라 어떠한 이념을 가진 나라로 송환될 것인지 논의되었는데, 전쟁 포로들은 몸에 반공 문구나 남한의 국기 등을 강제로 몸에 새겨야 했다. 문신을 거부하면 사상적으로 의심을 당했기에 생존의 선택이었고, 이후 북으로 가고 싶어도 반공문신을 몸에 새긴 채로 갈 수는 없었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몸의 선언을 강요당했던 그들은 지금 몸에 남은 흔적을 통해 개인에게 가해졌던 권력의 폭력을 증언한다. 개인의 역사에서 시작된 몸의 억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가 오늘의 현재를 만들었다 말했던 과거로 향하며 시대, 젠더, 성별을 경유해 확장해 간다.




http://kyurijeon.com / qrijeon@gmail.com / @kyuri.jeon
전규리(b.1990)는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순수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갈등과 협상의 장소로서 여성의 몸에 새겨진 언어, 젠더 및 정체성에 관심이 있다. 전규리의 작업은 미국의 뮈터 의학박물관(Mütter Museum) 및 필라델피아 현대 미술관(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등에서 전시되었다. 또한, 영국 아티스트 무빙 이미지 페스티벌(Artists’ Moving Image Festival), 인도네시아 페스티벌 필름 도큐멘타 (Festival Film Dokumenter), 대만 여성국제영화제(Women Make Wav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 한국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했다. 202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아시안 단편경선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202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 작가로 선정 되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울퉁불퉁한 연대기: 터져나온 저항, 몸의 발화들>, 2021
현수막, 스티커, 가변설치, 가변크기

《몸이 선언이 될 때》 제작지원 작품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이하 셰어)는 낙태죄 폐지 운동 과정에서 단순히 임신중지를 한 여성이 처벌을 받지 않게 하는 문제를 넘어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함을 알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과 연구를 전개해온 단체이다. 특히 셰어가 발간했던 책,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후마니타스, 2017, 이하 배틀그라운드)는 ‘낙태죄’를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성과 재생산권을 법, 정책, 종교, 문화, 보건의료, 인권 등의 전방위한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낙태죄' 뒤에 가려진 다양한 위계와 차별을 이야기했다. 이런 심도 있는 활동은 낙태죄 폐지 운동에도 기여했지만 무엇보다 소수자의 성적 권리 및 재생산과 관련한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며 우리가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어떤 태도로 재생산 운동의 관점을 확장하고 지속해야 하는지 안내한다. 이 전시에서도 셰어는 하나의 독립된 작품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각 작가의 작품이자, 개인의 선언이자, 여러 곳에서 계속되는 발화들이 공적인 역사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엮어낸다.

이 전시에서 셰어는 『배틀그라운드』에 수록한 연표를 확장해 보여주는데, 기존 연표가 형법 낙태죄 조항을 중심으로 국내외의 법적, 제도적 변화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했다면 여기에서는 (명시하지 않은)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 몸을 규제하려는 제도적 시도와 자유와 권리를 만들어내는 운동을 ― 곳곳에서 터져나온 저항의 언어와 함께 ― 보다 다각적으로 제시한다.

낙태죄, 우생학, 쾌락, 장애, 여성, 퀴어 등 몸을 둘러싼 여러 이슈/위치의 교차와 상호작용에 주목하며, 직선적이고 평면적인 형태 대신 분산돼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은 한쪽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이나 경과를 다른 쪽에서 찾으며 세 연표 사이를 오가게 될 것이다. “광장의 말”과 함께, 종종 서로 마주치고 엇갈리며, 이 역사의 가운데에 자리한다.





http://srhr.kr

셰어는 2015년 한 해 동안 진행된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을 통해서 만난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들이 2016년에 결성한 “성과 재생산 포럼”을 전신으로 하여 2019년 10월에 설립되었다. 성별, 연령, 장애, 인종, 국적,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지원, 포괄적 성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통합 센터를 지향한다. 누구도 차별 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며 충분한 정보와 평등한 자원을 바탕으로 서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사회를 꿈꾼다.

자세한 구성원 소개


전시 참여 구성원

나영정

taripink@gmail.com

나영정은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장애여성공감,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모임POP 등의 멤버이고,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등에서 함께 활동하며 오류동퀴어세미나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하루하루 급급한 활동과 공부, 글쓰기를 할뿐이지만 숨을 불어넣는 미술작업을 계속 접하면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안팎

http://slowlyaspossible.net

안팎은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노뉴워크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퀴어와 장애, 재현과 윤리 등에 관심을 두고 주로 예술과 정치에 관해 쓴다.


이은진

eunjin3435@naver.com

이은진은 젠더법학 연구자. 한국 땅에서의 법과 사회의 역동에 대해 성과 재생산을 중심으로 고민한다. 일본군 ‘위안부’, 미군 기지촌 성매매, 가족계획사업 등이 현재의 불평등과 부정의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 ‘사회적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이 재현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IMO: 평택 기지촌 여성 재현』 구술집을 펴냈다.


디자인 협업

여혜진

ydanji@gmail.com

여혜진은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들토끼들’의 멤버로 활동한다. 디자인과 동시에 경중을 두지 않고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몇몇 장소와 사람들, 친구들에게 몸과 마음의 적을 두며 살고 있다.





에이피피 (거리 투쟁의 아카이브) A-P-P (The Archive of Public Protests)

거리 투쟁의 아카이브 (The Archive of Public Protests), 2020-현재
웹페이지, 사진 슬라이드쇼, 가변설치, 가변크기


파업 신문 (The Strike Newspaper), 2020-현재
신문 인쇄물, 58x38cm



2015년 폴란드에서는 우익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성, 성소수자, 외국인 등으로 이어지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정책이 시행되었고 시민들은 저항했다. 특히 태아가 심각한 기형의 경우까지 낙태를 불법화하는 결정 이후 여성들은 대거 거리로 나왔고 600개 이상의 장소로 퍼지며 폴란드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되었다. 그리고 투쟁의 여러 물결은 서로 연결되며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이 역사의 증언이자 사건의 목격자로서의 기록과 저장은 중요했다. 시위는 격렬했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이미지는 현장의 온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매그넘 회원이자 사진을 주로 다루는 예술가 라팔 밀라크(Rafał Milach)는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다. 라팔 밀라크,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퀴어 사진가인 아가타 쿠비스(Agata Kubis)를 포함하여 예술가, 출판인, 활동가,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멤버가 함께 뜻을 모았다. 온라인 아카이빙 구축뿐 아니라 에이피피가 만들고 있는 ‘파업 신문 (The Strike Newspaper)’은 이들의 중요한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기존 언론이 담지 못하는 내용으로 첨예한 신문 그 자체의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디자인된 인쇄물은 시위현장에서 피켓으로, 거리에서 포스터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일상에 개입한다. 누구나 손쉽게 구호 배너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하여 지역의 작은 마을까지 시위를 조직할 수 있게 돕는데 이는 시각 예술가들의 고민과 실천의 결과다. 낙태죄 반대를 위한 ‘여성 파업’시위 때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기후위기, LGBTQ+ 커뮤니티, 벨라루스 민주화운동 및 정치적 난민에 대한 주제로 확장하고 연대하며 만들고 있다. 폴란드 전역의 예술기관, 시민단체 그리고 투쟁 현장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배포되어 현재 23,000부 이상이 발행되었다.




https://archiwumprotestow.pl

에이피피(A-P-P, Archive of Public Protests)는 폴란드의 사회적, 정치적 대립 현장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반 개방형 플랫폼이다. 정부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비판적 발언 뿐 아니라 비민주적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여러 사회적 상황에 대항하는 자발적 투쟁의 기록을 모으고 있다. 우익 포퓰리즘 정치에 대한 경고에서 시작되어 외국인 혐오,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그리고 기후 위기 문제 까지 다양한 차별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특정 사건의 보도를 위해 언론에 한 번 게재된 후 존재의미가 사라지는 이미지들이 더 많은 맥락과 힘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플랫폼을 구축했다. 다양한 연구자, 예술가 및 활동가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 아카이브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하는 모두에게 사용을 열어두고 있다.





올라 야시오노프스카 Ola Jasionowska

붉은 번개, 2020, 포스터 설치, ​100x70​cm


시위 현장에 사용되는 ‘붉은 번개’ (A-P-P 이미지)


폴란드의 전국적 시위대에 빠짐없이 사용되는 심볼이 있다. 붉은 색으로 그려진 번개모양의 디자인이 그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페미니스트인 올라 야시오노프스카가 2016년 인종차별 시위를 위해 이 로고를 처음 만든 후 폴란드 내 시위에 활발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는데, 낙태죄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그 규모가 대대적으로 커지면서 심볼은 다양하게 변형되어 피켓, 포스터, 티셔츠, 그래피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위에 활용되었다. 또한 폴란드 여성들의 시위가 국제적으로 여성 파업 운동에 영향을 끼치면서 폴란드를 넘어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되었고 여성 파업 투쟁의 상징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마치 한국사회에서 노란 리본 로고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세월호 진상규명를 촉구하는 의지를 표현하는 상징인 것처럼, 직접 그리기도 쉬운 이 붉은 번개는 ‘여성혐오에 반대하고 여성의 인권을 박탈당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선언같은 심볼이 되어 일상 곳곳에 퍼져있다.




https://www.behance.net/olajasionowska / olajasionowska.posters@gmail.com
올라 야시오노프스카는 폴란드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폴란드 국립 극장, 바르샤바 비엘키 극장, 바르샤바 폴스키 극장, 바르샤바 현대미술관 등 예술기관과 함께 일했다. 폴란드의 가장 오래된 주간지인 프세크로이, 뉴욕타임즈 등의 언론과 출판물의 일러스트를 그렸고 바르샤바시 도시 디자인 사업의 아트디렉터를 역임했다. 낙태죄 반대 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 시위현장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붉은 번개 마크를 만든 디자이너이다.





일렉트라 케이비 Elektra KB

시위 피켓 _ AAA (Protest Signs series _ AAA), 2021
사탕수수용지에 실크스크린, 27 1/2 x19 1/2 inch


시위 피켓 (Protest Signs), 2017
시위 퍼포먼스, 2017년 5월 1일, 뉴욕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돌봄과 상호 원조의 급진적 가족 구조, 사이보그와 여성 신을 중심으로 2021
사진, 글, 책자, 혼합매체, 가변설치


일렉트라 케이비의 작품에는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고, 시공간 또한 넘나들며 서사가 구성되며, 다양한 소스가 혼재하는 장면이 많다. 다루는 매체도 몸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퍼포먼스부터 한 땀 한 땀 작업하는 패브릭까지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전복적이고 SF적인 이미지의 재현은 시각적으로 개성있다. 예술가로서 상상력이 강하게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기저에는 항상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장애, 질병, 성소수자, 이민자 등 소수자와 디아스포라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언제나 깊이 동반된다.


시위 피켓 (Protest Signs) 시리즈는 작가가 행진이나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만들었던 피켓 등 싸인물을 이용해 제작한 후 작품으로 재맥락화된다. 작가는 전시된 작업을 매개로 다시 한 번 사건을 거론하며서 공론장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번 전시에 설치된 ‘I WAS NEVER YOURS’라는 강한 메세지가 적힌 포스터는 2017년 트럼프 정부의 인종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태도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여성 행진에서 작가가 직접 제작하여 사용했던 시리즈다. 선언 같은 문장은 이 전시의 타이틀과 조응하면서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처음 많은 부분을 공개하는 ‘핵친족주의 이후의 퀴어적 변화들: 돌봄과 상호 원조의 급진적 가족 구조, 사이보그와 여성 신을 중심으로’는 작가의 다른 작업과는 다른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업이다. 이민자로서 콜롬비아에서 뉴욕 베를린 등으로 이동하며 작업을 지속한 작가는 보고타, 베를린, 뉴욕에서 만난 퀴어 커뮤니티와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서로를 지탱한다. 국가, 종교, 전통적 가족 규범, 이성애 중심적 연애에서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쉽을 과감하게 제시하면서, 나아가 정서적 육체적 질병을 가진 이들이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한 파트너에게만 부담을 주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동료이자 친구인 트랜스젠더 작가 레드 워시번이 경험한 성전환 과정을 사진과 함께 쓴 글을 통해 보여주는데, 물리적인 고통과 괴로운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자유의 날’이라 말하는 워시번의 모습은,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를 향해 묵직한 질문을 전한다.




http://elektrakb.com / kb.elektra@gmail.com / @elektrakb
일렉트라 케이비(they/them)는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틴 아메리카계 이민 예술가이다. 육체적 질병과 장애를 유토피아적 가능성과 대안적 우주세계와 연결하며, 젠더, 이주, 문화횡단성, 권력 남용을 연구한다. 다큐멘터리와 SF를 연결하는 등 하이브리드적인 접근을 택하는 작가(they/them)의 작품에는 상호 부조, 정치적 행동, 소통과 같은 개념이 얽혀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평행 우주를 병치하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탐구한다. 익숙한 물건과 상징을 재해석하여 학습, 치유와 같은 개념과 공간 구성을 연결시키며 텍스타일,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다. 2016년 헌터 대학에서 MFA를 받았고, UDK-베를린에서 히토 슈타이얼과 함께 DAAD 상을 받았다(2015). 아트 포럼, 아트뉴스, 하이퍼알러직, BOMB, 가디언, 뉴욕 타임즈 등에 소개되었고, 바르샤바 현대미술관과 이탈리아 마드레 미술관에서 전시가 예정되어있다. 최근 전시로는 브루클린 미술관의 Nobody Promised You Tomorrow: 50 Years After Stonewall(2019)과 뉴욕 에바 프레젠후버 갤러리의 Abortion is Normal(2020)이 있었으며, 2020년 아트시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여성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중국의 잉촨 현대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





키라 데인 & 케이틀린 레벨로 Kira Dane & Katelyn Rebelo

미즈코(水子​​, Mizuko), 2019
HD 단채널 영상, 14분 45초


미즈코는 뱃속에 잠시 살았지만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다. 물(양수)에서 살다가 다시 물로 돌아가게 된 것을 지칭해서인지 물의 아이(水子)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는 미즈코를 애도하는 공양도 존재하는데 물의 아이를 다시 물로 돌려보내는 은유를 담고있는 불교의식이다. 물(양수) 밖으로 나와야 생명(나이)이 시작되는 서구적 관점으로는 더욱 생경한 관념이다. 미국과 일본의 환경과 감수성을 복합적으로 내재 하며 살아온 일본계 미국인 작가는 사후 피임약을 복용하고도 임신중지에 실패하여 수술대에 오른다. 임신중지가 비범죄이고 의료 정보가 많이 공유된 사회에서 이런 결정 및 실행 과정은 사실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임신중지를 경험한 여성이 겪는 물리적 고통이나 미묘한 감정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것까지는 무겁게 이야기 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을 경험하는 과정과 그 이후 찾아오는 다양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묘사한다.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은 임신중지가 불법인 사회에서는 범죄라는 법적 억압에 눌려 차마 느낄 겨를도 없었던 감정이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 도구로 환원했던 사회에서 강요되던 죄책감과는 또 다른 사적인 감정이며, 슬픔도 애도도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찾아오는 감각일 뿐이다. 특히 임신중지에 대한 보수적 시각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함께 갈 수 없는 구도로 만들며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이 생명에 대한 애도의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다뤘다. 이제 우리는 낙태죄 없는 세상을 살기 시작했다. 다양하게 발화되는 우리의 감정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긍정할 때다.




http://www.kiradane.com
키라 데인은 일본과 미국 혼혈의 뉴욕 출신 감독으로 현재는 일본 나라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매우 다른 두 나라의 문화에서 영향받은 경험과 감각을 기반으로 간과되기 쉬운 것들을 포착하여 이면의 뉘앙스를 추적하는 작가이다. 애니매니션과 실험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다. <미즈코>는 SXSW와 IDFA에서 심사위원특별상, 아틀란타 영화제에서 최고의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2019 선댄스 이그나이트 프로그램의 펠로우로 활동했다.


http://katelynrebelo.com
케이틀린 레벨로는 브루클린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감독이다. 그녀의 작품은 논픽션과 실험영화의 방식을 경유하여 여성성, 기억, 자율성 같은 개념을 새롭게 상상하여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미즈코>는 SXSW와 IDFA에서 심사위원특별상, 아틀란타 영화제에서 최고의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현재 제이콥 번스 영화 센터의 펠로우(Creative Culture Filmmaker Fellow)이다.




기획 김화용 Hwayong Kim

circuswoman@gmail.com
김화용은 고정관념, 관습,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며 이를 둘러싼 경계, 다양성, 젠더에 대한 고민을 만남, 여행, 워크숍, 퍼포먼스 등의 방법으로 작업해왔다. 최근에는 예술 그 자체보다 삶을 예술적으로 조직하는 이들에게서 정치적 힘과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으며, 비거니즘 시각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의 신화 뒤에 가려져 있던 비인간 생명종의 착취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문화 생산자를 위한 공간 : 가옥’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예술이라는 제도 바깥의 전문가들과 협업 가능성을 실험했고, 사회와 예술의 관계 및 공존을 고민하는 예술가 그룹 ‘옥인 콜렉티브’의 멤버로 활동했다.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인천아트플랫폼, 2021, 기획 김현진) 《어스바운드》(아마도예술공간, 2020, 기획 윤민화), 《올해의 작가상 2018》(국립현대미술관, 2018), 《역사를 몸으로 쓰다》(국립현대미술관, 2017)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기획자로서 《제로의 예술》(2020-21, 공동기획 강민형 전유진), 《Go-vegan, Un-learning: 비거니즘으로 그리는 문화 예술의 새로운 지형도》(통의동 보안여관, 2020) 등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